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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본 학회 명예고문이신 박성조 종신교수에게 ‘한국의 현주소’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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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독일)=김학재 기자】 "지금의 독일 배우기 붐은 한국 엘리트들의 포퓰리즘입니다. 아직 한국은 독일의 복지 모델을 추구하기엔 부족합니다."

석학의 직언은 날카로웠고 매서웠다. 동양인 최초 독일 대학 종신교수로 임명되며 학문적으로 명성을 날린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종신교수(78·사진)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한국의 현주소를 지적했다. 수십년간 독일에 거주하며 독일의 역사를 지켜본 박 교수는 한국 내 독일 배우기에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무조건적인 독일 배우기를 날서게 비판했다. 대립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에선 기본적 사회인식부터 가다듬어야 선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속적인 성장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복지 확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박 교수는 독일을 배우겠다며 베를린을 찾는 한국의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날렸다. 지난해 12월 8일, 독일 베를린 젤렌도르프 근처에 위치한 박 교수 자택에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독일은 어떻게 중산층이 강한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나.

▲독일도 전후 오랫동안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을 배우겠다고 했지만 저조한 경제성장과 고령화, 정부의 과도한 부채 등으로 많은 부분을 수정했다. 독일의 특수한 전제조건을 고려한다면 한국은 독일 모델을 이전받아 운용할 수 없다. 독일은 1880년 비스마르크 시대에 이미 제한된 범위 내에서 연금, 건강보험, 재해보험을 도입 실시했다. 1919년에 신체장애자 보험, 1927년 실업보험 등에 따른 오랜 역사가 있다. 당시 국가가 독재적으로 도입한 것이 대부분이다. 전후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약 30년간 성장해왔고 정부는 고용과 복지를 기업에 의무적으로 적용해 추진했다. 정부 주도의 협조적 자본주의, 협조적 노사관계로 강한 정부가 시장의 왜곡성을 수정하고 있다.

―독일의 협조적 노사관계는 어떠한가.

▲독일도 한때 극단적 요구로 노사관계가 첨예했던 적이 있다. 1973년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겨 1979년에 공동결정권이 법으로 만들어졌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가 법안에 섞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격했던 금속노조 및 자동차노조가 계급투쟁적 의지를 버린 것이다. 또 노동자 위치를 부상시킨 법이 만들어져 노동자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정작 노동자들 스스로 자제해서 경제불황 극복에 기여했고 그때부터 협조적인 노사관계가 만들어졌다.

―한국의 독일 배우기를 어떻게 생각하나.

▲독일의 사례를 보면 협조적 노사관계에서 볼 수 있듯 '타협'과 '양보'가 기본원칙으로 내재돼 있다. 이 같은 기본전제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결국 현 시점에서 한국에서 독일을 배우자고 하는 것은 한국 엘리트들의 포퓰리즘이라고 본다. 법과 질서, 규제 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문화 때문에 어떠한 형태의 복지국가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선진 복지제도를 한국에 적용하는 것이 어려운가.

▲기계적으로 한 나라의 경험을 다른 나라로 이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경험'은 시간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어 한국에서 흔히들 말하는 '모델의 이전 가능성'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복지 확대 논란은 어떻게 봐야 하나.

▲한국은 복지를 얘기하기 앞서 지속적인 성장부터 이뤄야 한다. 한국은 장기적으로 안정된 성장을 하기도 전에 복지를 얘기하고 있다. 제가 보기엔 일반적으로나 공식적으로 향후 20년간 성장을 지속하면서 점차적으로 연금 혜택을 늘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성장이 먼저다. 성장부터 하면서 복지를 해야 한다.

―원활한 복지제도 마련을 위해선 성장을 통한 세원 확보가 우선이란 뜻인가.

▲한국은 국가가 거둬들이는 예산수입이 적어지고 있지만 독일은 경제성장으로 예산이 많이 들어오니까 복지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경제성장 수준을 4% 가까이 내다보고 있으나 향후 20~30년을 내다보고 진화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예산 수입의 기둥은 중산층이다. 유럽에선 중산층의 대다수가 중소기업이다. 큰 기업은 조세회피도 하고 세금도 많이 안 낸다. 이것은 동서남북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똑같다. 지방에 뿌리내리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성실하게 낼 세금은 다 낸다.

―중산층에 대한 유럽과 한국의 문화 차이가 큰가.

▲유럽에선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북부 이탈리아에 중산층이 많다. 이들 중산층의 큰 특징은 제조업체 성격의 자영업자 중심으로, 중소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중산층의 정의를 제대로 내려야 한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독일은 마이스터 제도와 같이 장인들이 기술을 연마해서 제조업에 나선 것이 중산층의 원천이다. 그렇게 자기 기술을 숙련하고 젊은 청년들을 교육시키며 명맥을 유지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유럽 개념에서 볼 때 중산층이 아주 드물다.

―구체적으로 유럽 중산층은 어떠한가.

▲유럽의 중산층은 사회적으로 볼 때 중추를 이루고 있는데 도시보다 지방에 흩어져 있다. 지방문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사회안정 도모에 큰 역할을 한다. 대량생산 체제와 자본주의가 들어와도 제조업 중심의 중산층은 굳건히 버텨냈다. 특히 이 사람들은 사회적 안정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 자부심이 크다.

―결국 고유 문화에서 중산층이 형성된다는 것인가.

▲중산층이 없으면 그 나라는 발전할 수가 없다. 독일 중산층 중 대표적인 마이스터들의 경우 습득한 기술을 항상 제자들에게 전수해주고 자손대대로 이어간다. 한국도 장인 등 기술을 전수하는 사람들이 지방 향토문화를 유지하고 지방을 지켜내야 한다. 도시화, 산업화되면서 그런 문화가 희석되고 있는데 그 나라 정체성, 즉 사회문화를 어느 정도 지키느냐가 핵심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유럽과 달리 한국 중산층은 서울에만 몰려있다. 한국의 중산층 정의에는 사회안정은 포함돼있지 않고 도덕과 윤리적 측면도 없다. 자영업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중산층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투기로 돈을 번 사람들 다수다. 프랑스의 벼락부자들같이 그런 중산계급이 많으면 사회안정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안정을 파괴한다.

―유럽에서도 최근 중산층이 점차 줄어든다고 하는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오래됐다. 젊은 세대가 줄고 고령화 세대가 늘고 있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들어오다 보니 현장경험 없이 주식 등만 잘하면 돈을 버니까 젊은 사람들이 지방에 있지 않으려 한다. 미국계 금융자본주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저항도 많았다. 그래서 새로운 생활의 대안이 각 지방에서 나타나고 있다.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다시 생각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예를 들면 라이프스타일 관련 산업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정치인들이 독일을 배우겠다며 많이 찾아오는데.

▲공부를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는데 왜 한국 연구소에서만 공부하느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서 잡아야지. 정치인들이 참 많이 왔다갔다 한다. 한국 정치인들이 떼로 와서는 베를린 장벽 앞에서 사진 찍고 가더라. 독일에서 공부하려면 독일 연구소를 찾아가고 분야에 따라 배워야 한다. 복지국가 체제를 알고 싶으면 복지를 담당하는 관료들과 재무상, 노동 담당 관료들을 만나야 한다.<2014. 01.03>>

hjkim01@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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