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상봉 행사의 준비를 위한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이 오는 5일 판문점에서 열릴 예정이다. 북한이 어제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5일 또는 6일 중에 남측이 정한 날짜에 맞춰 이산가족상봉문제를 논의할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자는 내용의 전화통지문을 남측에 보내왔다. 이에 정부도 즉각 5일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자고 북측에 답신했다. 그러나 이번에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이 개최된다고 해서 우리 정부의 계획대로 2월 중순에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성사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한은 3일 전화통지문에서 우리 정부가 제의한 이산가족상봉 행사일자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넷판>의 3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학봉 영국 주재 북한대사가 한미합동 군사훈련으로 인한 한반도 전쟁 촉발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이산가족상봉 행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키 리졸브 연습 등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이산가족상봉 행사문제를 연계시키는 북한의 대남접근전략이 함의돼 있다.
북한의 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의 3일자 보도에 의하면, 남측이 외세의 핵 끌어들이는 행위를 중단하고 북한 국방위원회의 ‘중대제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재차 촉구했다. 북한은 지난달 16일 국방위원회 이름으로 우리 측에 보낸 이른바 ‘중대제안’을 통해 30일부터 상호 비방·중상을 중지하자고 제의했다. 이 제안의 주장은 여전히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북한이 지난해 추석의 이산가족상봉 행사에 합의했다가 일방적으로 취소한 적이 있다. 또한 북한은 우리 정부가 올해 신년 초 제안한 설맞이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거부한 후 보름 만인 지난달 24일 갑자기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남측에 제의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2월 중순의 이산가족상봉 행사 계획은 좀 더 시간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서는 최소 2주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에도 2월 중순의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 결과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마무리되는 다음 달 초까지도 개최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다음 달 중순에 가서야 이산가족상봉 행사의 실마리가 잡힐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산가족상봉이 남북관계 개선의 부침(浮沈)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는 점에 도사리고 있다. 남북관계의 소통이 잘 이루어질 때 이산가족상봉 행사문제도 잘 풀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시기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에 이어 현재까지도 남북관계가 불통(不通)과 먹통(墨桶) 구도 속에 함몰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남북관계의 불통과 먹통은 남북회담, 금강산관광사업, 남북철도·도로사업, 남북주민교류협력, 남북연락회선, 항공·선박운행 등에서 이어졌다. 이는 남과 북이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하는 상대주의를 거부하고 있는 상호정책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불통은 소통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먹통은 무반응과 무지, 차단과 거부, 딴지와 헛소리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먹통은 소통의 가능성이 닫혀있는 것이다.
이제 남과 북은 이산가족상봉 행사로 남북관계의 불통과 먹통을 넘어설 기회를 맞고 있다. 이번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이산가족상봉 행사 개최의 결실을 얻어내는 것이 1차적으로 남북관계의 불통에서 벗어나 소통으로 가는 출발선이다. 이 출발선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전반적 개선을 향한 개통(開通)의 길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 분단체제에서 고착·반복된 남북관계의 먹통시대를 마감하는 지혜로운 결단인 것이다. 남북관계가 워낙 먹통이어서 무슨 얘기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면, 통일대박의 꿈도 접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자, 이산가족상봉 행사의 계기로 남북관계의 불통과 먹통을 넘어서서 통일대박의 꿈을 향하여.
<경기신문, 2014.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