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학 창시자’ 갈퉁 교수 제자 이재봉 교수 좌담[한겨레 신문 인용]
지금 한반도 정세는 21세기 들어 가장 긴박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미국의 무력 동원과 한-미 공동군사훈련, 개성공단의 사실상 폐쇄 등 남북관계는 근래 최악의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분단과 냉전, 전쟁 위기의 족쇄를 풀지 못하는 암울한 한반도 현실에서 진정한 남북 화해와 평화의 해법은 무엇일까. 남북한 사람들이 갈등 해소를 위해 본질적으로 성찰해야 할 요점들은 무엇일까. <한겨레>는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평화의 해법과 지혜를 찾아보고자 평화학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요한 갈퉁(83)과의 대담을 창간 25돌 특집으로 마련했다. 그의 제자인 이재봉 원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평화연구소 소장)가 지난달 28~29일 갈퉁이 머물고 있는 일본 교토로 날아가 한반도 갈등과 평화 해법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재봉(이하 이) 요즘 한반도에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면서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는다. 한반도 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온 외국인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한 갈퉁(이하 갈퉁) 북한이 위협하듯 핵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이 어떻게 될지 누구보다 북한이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소규모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이 이른바 ‘북핵 문제’가 제기된 지 20년이 지났다. 양자회담, 3자회담, 4자회담, 6자회담 등 다양한 형태의 회담이 여러 차례 열렸지만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최근 한반도 상황을 분석, 평가하면서 갈등과 긴장의 근원적 배경이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짚어 봤으면 한다.
갈퉁 한국전쟁 이후 상황이 이렇게 악화한 적이 없다. 핵전쟁 공포를 낳았던 1962년 10월의 쿠바 위기가 떠오른다. 쿠바처럼 북한도 한국전쟁 이후 60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평화조약과 국교 정상화를 거부당하며 봉쇄와 제재를 받아 왔다. 미국과 남한이 북한에 근접해서 벌이는 연례적 군사훈련에 따라 군사적 압박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소련(러시아)과 중국은 남한을 인정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아직도 북한을 인정하지 않은 채 남한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소련군과 중국군은 북한을 떠난 지 오래됐지만, 미군은 중국을 견제, 포위하기 위해 아직 남한에 머물러 있다. 가까운 미래에 철수할 계획도 물론 없다. 미국은 독립전쟁 이후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한국전쟁에서 이기지 못해 북한에 대한 본능적 증오를 지니고 있다. 특히 1989~1990년 동독이 붕괴되고 서독에 흡수된 뒤부터 남한과 함께 북한의 붕괴를 추구해 왔다. 미국 강경파들은 대북 적대관계를 유지하면서 보복전쟁을 일으키고 이번에는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듯하다. 한반도 위기는 5개국이 연루되어 있다. 미국+일본 및 미국+남한 동맹이 암묵적인 중국+북한 동맹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미국은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놓으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한편 세계 제1의 경제대국 자리를 놓고 중국과 경쟁하며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집권 강경파가 최근 위기를 일본이 정규 군대를 보유하는 ‘보통국가’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1910년(한일병합)-1931년(만주사변)-1945년(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 걸친 일본의 죄를 인정하고 남북한 및 중국과 화해하려던 과거의 시도조차 물거품으로 만들며, 전쟁 권한을 박탈한 헌법 9조를 제거하려 하는 것이다. 이렇듯 한반도 위기는 미국의 적대적 대북 정책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동아시아 전체의 갈등과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