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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부회장님과 요한갈퉁 인터뷰-2

이재봉: 그러면 한반도 위기를 해결하며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갈퉁: 우선 북한이 언어로든 물리적으로든 각종 위협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다자간 협상으로 재화를 직접 주고받는 국제적 친선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중국, 대만, 홍콩과 마카오, 일본, 한반도, 몽골, 극동러시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중국과 북한도 포함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과 연계하여 미국 및 다른 태평양 국가들도 동등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모든 나라가 상호 간에 동등한 혜택을 누리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재봉: 북한의 위협은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궁극적으로 국교를 정상화하고 평화협정을 맺는 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와 관련하여 선생이 강조해온 것 가운데 하나는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수단이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언어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갈퉁: 국교 정상화나 평화협정이라는 북한의 목표는 훌륭하다. 그러나 수단에서는 좋은 점이 적고 나쁜 점이 많았다. 특히 소통하는 방법이 좋지 않다. 목표는 고수하되 수단은 바꿔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 그런데 평화적 해결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창의성과 인내력이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평화적 접근 방법은?



갈퉁: 약 5년 전 뉴욕 필하모닉 악단이 평양에서 공연했다. 아마 ‘필하모닉’이란 이름 때문에 북한이 초청했는지 모른다(‘필’은 사랑을 뜻하고, ‘하모닉’은 조화를 의미한다). 1971년엔 미국 탁구팀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는데, 이 핑퐁 외교가 미-중 국교 정상화로 이어졌다. 어려운 정치·군사 문제를 예술·스포츠 교류로 풀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뉴욕에 현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이 있는데 북한이 여기의 소장품들을 평양에서 전시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자국의 문화를 찬양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서울대와 김일성대, 그리고 예일대나 컬럼비아대(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는 조금 폐쇄적인 경향이 있으니까)가 합동 세미나 등을 해보는 것도 남한-북한-미국 사이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푸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재봉: 요즘 개성공단이 (영구)폐쇄될 위기에 놓여 있다. 어떻게 파국을 피할 수 있겠는가?



갈퉁: 남과 북은 먼저 해결 방안을 추구하며 협상해야 한다. 자신은 옳은데 상대가 잘못됐다든지 자신도 나쁘지만 상대는 더 나쁘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격퇴하려는 것은 전통적 방법이다.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상대가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재봉: 선생은 약 한 달간 일본에 머물러 왔다. 요즘 아베 총리가 과거 침략을 부정하며 역사 왜곡을 저지르고 관료들은 대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



갈퉁: 아베 내각은 초기부터 강력한 대외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평화헌법을 고치고, 역사를 다시 쓰며, 젊은이들이 일본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을 시키는 게 우선 목표다.



이재봉: 일본 국민의 지지가 높다.



갈퉁: 맞다. 지금까지 7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아베 내각이 펴고 있는 ‘아베노믹스 ’(Abenomics)라는 이름의 강력한 경제성장 정책이 문제가 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초자본주의적(hyper-capitalist)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합류하려 한다. 중국과 북한에 대해 일본 안보의 수호자인 미국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다. 일본이 이 협정에 합류하면 ‘일본의 미국화’가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고용 보장 없이 고용과 해고가 반복되고, 미국이 통제하는 회사가 늘며, 국내산 쌀, 밀, 쇠고기 등이 살아남지 못한 채 미국 제품이 어느 때보다 많이 수입될 것이다. 결국 미국의 왕성한 이익 추구에 일본의 모든 게 희생되리라 생각한다. 덧붙여 일본의 식량 자급률이 매우 낮다. 1973년엔 73%였지만 지금은 39%에 불과하다. 미국은 128%,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237%, 영국은 73%를 기록하고 있는데, 식량의 60% 이상을 수입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식품 가격이 곧 오를 것이며 임금이 오르기 전 가계에 타격을 줄 것이다. 아베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동아시아의 불안을 조성하는 이 협정에 합류하는 대신 이웃국가들에 합류하면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을 고쳐 중국을 포함한 관련 국가들이 평등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센카쿠 또는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 사이의 영토 분쟁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갈퉁: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문제다. 특히 섬 국유화를 추진하는 등 일본의 강경한 입장이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도 일본에 경고를 보냈지만 따르지 않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공동 소유 또는 공동 관리로 해결할 수 있다. 그 섬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나 수입을 두 나라가 5 대 5로 나누어 갖거나, 앞서 얘기한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 이로 하여금 그 섬을 관리·감독하도록 하고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공동체가 수입을 4 대 4 대 2로 나누어 가질 수 있다. 아베 정권에서는 어려울 것 같고 다음 정권에서 협상을 시작하거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재봉: 한반도 위기가 동아시아 위기라고 했지만, 핵심은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다. 그런데 이는 주한미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렵다. 미국은 북한 핵무기 자체보다 핵물질이나 핵기술이 이란이나 알카에다 등 테러세력들한테 전파되거나 확산되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쓴다. 한편으론 남북이 통일되더라도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북한이 줄기차게 평화협정을 주장해도 미국과 남한에서는 정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주한미군 때문 아니겠는가. 평화협정을 맺으면 주한미군을 유지할 명분이 약해지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포위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고, 주한미군을 유지하려면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갈퉁: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기서 북-미 국교 정상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오직 두 나라만 합의하면 된다. 평화협정은 국교 정상화보다 범위가 넓다. 적어도 남한과 중국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중립화는 비동맹보다 범위가 넓고 어려운데, 중립화가 어렵다면 비동맹으로도 충분하다. 남한과 미국, 북한과 중국이 군사동맹을 해체하면 족하다는 뜻이다.



이 선생은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 또는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특히 선생이 창안한 ‘구조적 폭력’과 ‘적극적 평화’라는 말은 일반인들도 널리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두 용어는 개념이 너무 넓고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갈퉁: ‘구조적 폭력’이나 ‘적극적 평화’는 나의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다. 당연히 이에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 글을 얼마나 읽고 그런 비판을 하는지 의문이다.



이 지금까지 약 150권의 책을 펴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갈퉁 작년엔 <평화경제학> , <평화수학> 등을 펴냈다. 올해는 중재, 화해 등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나에겐 은퇴가 없다. ‘은퇴’(retire)라는 말은 ‘다시’(re) ‘피곤하다’(tire)는 말인데 난 결코 피곤해하지 않는다. 나에겐 연구만 있을 뿐이다. ‘연구’(research)라는 말은 ‘다시’(re) ‘찾는다’(search)는 뜻인데 난 계속 찾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피곤해하지 않으며 계속 찾는 게 앞으로의 계획이다.



이재봉: 은퇴와 연구에 대한 선생의 조작적 정의가 재미있다. 좁게는 한겨레신문 독자들, 넓게는 한국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갈퉁: 한겨레신문 창간 배경과 정신에 대해 조금 안다. 창간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독자들이 한겨레신문에 긍지를 갖고 더 지지해서 더 발전할 수도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해온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을 연구하면서 아무리 큰 충격(trauma)이라도 40년이 지나면 치유된다고 주장해 왔는데,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화해로, 갈등에서 조화로 나아가게 되길 희망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까 말했듯 남과 북이 해결 방안을 추구하며 협상을 해야지, 자신만 옳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 해서는 화해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이재봉 : 출국 준비에 바쁠 텐데 오랜 시간 대담에 응해줘 고맙다.



정리 이재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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